[국내] [함께 만드는 세상] 후원자 도움 받아 공부한 찬미씨 “사랑 듬뿍 퍼주는 선생님 될래요” 2017-05-25


박찬미(24)씨는 강원도 동해에 있는 동호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다. 10여 년 전 이 학교 학생이던 박씨는 지난해 9월 ‘선생님’으로서 모교(母校)에 돌아왔다. 박씨에겐 학창시절이 행복하기만 한 때는 아니었다. 1남2녀 중 장녀인 박씨가 열 살이었을 때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슬픔을 추스를 틈도 없이 박씨의 어머니는 주차장 안내원, 급식소 조리원 등의 일을 하며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박씨의 마음 한구석은 늘 시렸다.

비영리단체(NPO)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것은 열한 살 때부터였다. 월드비전 동해 복지관 직원이 직접 집에 찾아와 이런저런 상담을 한 뒤 박씨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박씨는 “매달 후원금이 들어왔고 생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땐 편지와 선물을 받기도 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교외로 복지관 가족 캠프를 떠난 것이었다. 아버지를 여읜 뒤로는 처음 가 본 가족여행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막연히 되고 싶었던 ‘선생님’이라는 꿈도 더 생생해졌다. 공부가 힘들 때면 어머니와 동생들의 얼굴, 이름 모를 자신의 후원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교사가 된 지금, 박씨의 목표는 ‘제자들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랑을 듬뿍 퍼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자신이 후원받던 월드비전의 ‘후원자’가 됐다. 박씨의 동생도 언니를 따라 최근 교대에 진학했다.



경제적·정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작은 도움’은 때때로 엄청난 힘이 된다. 특히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인 아동·청소년들은 그런 도움들을 원동력 삼아 자립할 기회를 갖게 된다. 박찬미씨가 그러했고, 전국 곳곳에는 NPO와 후원자들이 키워낸 제2, 제3의 ‘찬미씨’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스스로 일어설 날을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사춘기 방황 접게 해 준 ‘교복 쿠폰’

강원도 평창군 축산관리과에서 서기보로 일하는 한세빈(19)씨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고교 진학을 반 포기한 상태였다. 한씨는 “당장 교복을 살 형편조차 안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잇따라 집을 떠났다. 극심한 사춘기로 방황을 거듭하던 어느 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모님 대신 그를 키워준 고모가 사회복지 분야를 잘 알고 있는 게 끈이 됐다.

어린이재단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을 때 한씨는 단번에 ‘교복’이라고 답했다. 재단이 준 교복 쿠폰을 들고 고모와 함께 교복집을 갔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새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고모가 ‘너무 예쁘다’며 감격해 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걸 참 오랜만에 본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정기 후원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후원금은 한씨가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됐다. 1학년 때는 농업계 고교 학생들의 경진대회에 나가 동상을 받았고, 다음해에는 공무원 준비반에 들어가 시험을 준비했다. 결국 고3이 끝나기도 전인 지난해 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월급 받아 사 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


자폐성 장애 2급 장애인인 이관태(26)씨는 이제 직장생활 7년차에 접어들었다.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굿윌스토어’에서 영업팀 직원으로 일하는 이씨는 바리스타로도 활약할 만큼 재주가 많다. 이씨가 일하는 영업팀에는 이씨를 포함해 총 13명의 장애인 직원이 있다. 그중에서도 ‘성실파’ 직원이다. 이씨는 “일하는 시간이 재밌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참 좋다. 내가 번 돈으로 아이스 카페모카를 사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일반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씨는 특수학교인 밀알복지재단 ‘밀알학교’로 입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립의 희망은 옅기만 했다. 이씨의 어머니 필감려(54)씨는 “관태를 처음 특수학교로 보냈을 때 나조차도 기대를 모두 놓아버린 상황이었다. 지금처럼 통장에 아들의 월급이 찍히는 일은 상상도 해 본 적 없다”고 털어놨다.



밀알학교는 이씨에게 전환점이 됐다. 그곳에서 비슷한 또래의 장애인 친구들과 만나 사회성을 키우고 바리스타 일을 배운 이씨는 2011년 굿윌스토어 송파점에 취직했다. 물론 신입 시절도 녹록지는 않았다. 일을 시킬 때마다 “싫다”고 소리를 지르며 매장을 뛰어다니는 통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늘 애를 먹었다.

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기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비장애인 직원들이 수시로 이씨에게 해야 할 일을 주고 5분에 한 번씩 다가와 관심을 기울였다. 밥도 함께 먹었다. 그사이 자기밖에 모르던 이씨에게도 책임감과 함께 ‘동료애’라는 것이 생겼다. 이미애(51) 굿윌스토어 송파점 영업팀장은 “이씨가 매일 밥을 먹고 혼자 쿠키를 사먹는 버릇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쿠키를 여러 개 사와서 다른 직원들과 나눠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꿈을 되살려 준 ‘잘 컸네’ 말 한마디


굿네이버스에서 아동 후원 사업 개발을 맡고 있는 도유진(24) 대구서부지부 간사의 어린 시절 친구는 TV가 전부였다. 여덟 살 때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모님 집에서 살게 된 그는 학교 가는 일 외에는 집 밖을 나간 기억이 거의 없다.

또래와 어울려 소꿉놀이를 즐기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겨울부터였다. 방학 중 결식 아동들을 위해 운영되는 굿네이버스 ‘희망나눔학교’에 참여한 게 계기였다. 매일 오전 9시 교실에 가면 친구들 20여 명을 비롯해 자원봉사를 나온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그를 반겼다. 이후 학기 중 운영되는 공부방인 ‘하늘지역아동센터’에도 다녔다. 도 간사는 “당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너무 멋져 보여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만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돼 포기했었다”고 말했다.

여러 해가 지나 대학 1학년이 된 도 간사는 의무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찾은 지역 아동센터에서 우연히 옛 선생님을 만났다. 유년 시절 하늘지역아동센터를 다닐 때 만났던 선생님이었다. 도 간사는 “후원 아동에서 대학생이 된 나를 본 선생님이 대뜸 ‘잘 컸다’고 말해주셨다. 이 한마디에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다시 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내내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아이들과 만났다. 그리고 2015년 굿네이버스에 공채로 입사했다. 그렇게 후원을 받던 아이는 어느새 후원을 해주는 어른이 돼 있었다.



홍상지·김준영 기자 hongsam@joongang.co.kr

: 중앙일보